원래 SF 장르는 좋아하지는 않는데, <미키 17>은 예고편에서부터 이상하게 끌렸어요.
봉준호 감독 영화는 늘 뭔가 복잡할 것 같지만, 또 묘하게 웃긴 구석이 있잖아요.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도 '이 대사 진짜 웃기다' 했다가,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은근히 찔리고,
또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미키 17〉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대사들을 중심으로,
그 안에 담긴 의미나 느낌을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해요.
웃긴 줄 알았는데 생각할수록 묵직했던 한 마디
영화 중간쯤 미키가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깨어나면서 이렇게 말해요.
“죽는 것도 이제 익숙해졌어.” 처음엔 그냥 블랙코미디식으로 들렸어요.
근데 생각해 보면, ‘죽음’이라는 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조금 무섭기도 하고요?
반복되는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대사는, 복제된 인간이 얼마나 ‘소모품’처럼 여겨지는지를 한 줄로 말해줘요.
한참 웃다가, 어느 순간 좀 씁쓸해졌어요.
그리고 또 하나. 미키 18이 미키 17을 보며 말하죠. “넌 내가 아냐. 근데 나야.” 이건 듣는 순간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영화 끝나고 나면 계속 맴도는 문장이에요.
자아가 하나가 아니고, 복제가 반복될수록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
말장난 같지만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말이에요. 이런 말장난 같은 대사들이 웃긴 이유는 단순히 유머 코드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그 말들이 미키라는 존재 자체가 갖고 있는 삶의 방식, 혹은 그 삶이 부여된 의미를 건드리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말은 가볍게 던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더라고요. “죽는 게 익숙해졌다”는 말 뒤에는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겪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고, “넌 내가 아니지만 나야”라는 말 안에는 자아의 정체성과 존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숨어 있었어요. 말 자체는 짧고 재치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 문장을 되뇌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고, 그런 면에서 이 대사들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전체적인 세계관과 철학을 압축한 문장처럼 느껴졌어요. 그렇게 보면 미키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암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SF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블랙 코미디
<미키 17>은 진지한 이야기 속에도 빼놓을 수 없는 유머가 있어요.
가령 이런 장면이 있어요. 미키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얘 또 죽었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죠.
“얘 오늘만 두 번째야.” 이런 말이 대사로 나온다는 게 진짜 충격적이었어요.
죽음을 두 번이나 겪었는데도, 그게 일상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건... 진짜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무서운 사회예요.
또 하나 웃겼던 건, 미키가 “내가 너라면, 난 날 안 믿을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
자기 자신을 두고 하는 대사인데, 너무 자기부정적이면서도 상황을 완전 꿰뚫고 있더라고요.
이런 블랙코미디식 대사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가 잘 묻어나서, 관객 입장에서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도 했어요. 사실 이런 유머가 있는 SF는 흔치 않잖아요. 대부분 미래 사회, 기술, 존재론 같은 개념을 딱딱하게 설명하거나 심각한 분위기에서 풀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미키 17>은 그 틀을 완전히 뒤집는 방식이었어요. 웃긴 장면도 많고, 말도 안 되는 대사도 많은데, 이상하게 그 안에서만큼은 세계관이 정말 그럴듯하게 느껴졌어요. 이건 설정을 비트는 게 아니라, 캐릭터와 이야기의 감각을 빌려 세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반복되는 죽음을 두고 웃고 넘길 수 있다는 건, 관객 입장에서 복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돼요. 그냥 코미디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은근한 풍자처럼 느껴졌어요. 그게 이 영화가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웃음 뒤에 묘하게 쓴맛을 남기는 이유였던 것 같아요.
“죽어도 괜찮다”는 말이 왜 자꾸 기억에 남을까?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정은 ‘소모’였어요.
복제 인간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한 번 쓰고 버리는’ 구조잖아요.
그래서 “죽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등장할 때마다, 듣는 내가 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실제로 극 중에서도 다른 인물들이 미키에게 너무 쉽게 이 말을 해요.
이 대사는 영화 속 시스템의 차가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현실 사회에서도 우리가
무심코 넘기고 있는 '대체 가능한 존재들'에 대해 묘하게 떠올리게 만들더라고요.
결국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들은 단순히 재밌거나 독특해서가 아니라,
그 말들이 지나고 나서 생각할수록 의미가 바뀌는 종류의 말들이었어요.
웃기게 말해도 진심이 있고, 장난처럼 들려도 날카로운 문장들이 많았던 작품인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미키 17>은 ott에도 개봉한다면 한번 더 볼 생각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장이 던지는 여운이 길어졌어요.
“죽어도 괜찮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입장에서 ‘넌 대체 가능해’라고 선언하는 말이잖아요.
그 말이 반복될수록 미키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느껴졌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잊고 다시 태어나야만 했죠. 처음엔 그저 농담처럼 던져진 대사였는데, 영화가 끝날 즈음엔 그 말이 왜 그렇게 반복됐는지 알겠더라고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가볍게 웃으면서도 그 웃음 속에 남는 이상한 찝찝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에요.
재밌게 봤는데 괜히 찔리고, 대사가 웃긴데 또 생각해보면 의미가 무거워서 혼자 다시 떠올리게 되는 그런 느낌.
미키 17은 그런 묘한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이라, 오히려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였어요.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그 말에 담긴 철학은 꽤 진지하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그런 영화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