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버스킹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게 아마 몇 년 전 어느 여행지에서였던 것 같아요. 그때 감성에 젖어 잠시 멈춰 섰던 기억이, 영화 <원스>를 처음 봤을 때랑 묘하게 겹쳤어요. 요란하지 않은데도 마음 한가운데 톡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거든요. 그 장면 하나하나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다정하게 다가왔고, 보는 내내 '이거 그냥 내 얘기 같은데?'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괜히 한참을 멍하게 있기도 했고요. 그게 이 영화의 묘한 힘 같아요. 아주 사소한 감정조차 조용히 끄집어내는 연출, 그리고 노래. 그런 영화는 흔치 않아요.
낮은 시선의 연출, 일상의 무심함을 닮다
<원스>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누군가를 조명하기보다는 그냥 함께 걸어가는 느낌을 줘요. 특히 인물들을 클로즈업하기보단, 약간 거리를 두고 지켜보듯이 찍는 연출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방식은 마치 우리가 길에서 무심히 누군가를 스치듯 바라보는 것 같달까요. 영화 속 두 사람, 이름조차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관계는 낭만적이라기보다는 담백하게 그려져요. 덕분에 과장되지 않은 감정들이 진짜처럼 다가오고, 우리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에 스며들게 돼요. 감독 존 카니는 마치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이 거리에서 느껴봐"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죠.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진하게 남아요.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영화 전체에 흐르는 거리의 공기예요. 그 특유의 적당히 텁텁하면서도 따뜻한 공기가 이 영화의 정서와 너무 잘 맞아떨어져요. 복잡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연출이 영화의 진심을 말없이 전달해주는 셈이죠.
음악이 전하는 감정, 말보다 선명하게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음악이에요. "Falling Slowly"라는 곡은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좋은 멜로디였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뼛속까지 느껴졌어요. 이 노래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음악은 대사처럼 기능하면서도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하죠. 특히 노래를 만들고 주고받는 장면들은, 인물들 간의 감정을 엿보는 창 같았어요.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복잡한 감정이 가사 한 줄, 피아노 한 음, 기타 스트로크 하나에 담겨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관객도 자연스럽게 그 감정선에 동참하게 돼요.
음악이 중심이 된 구조 덕분에 영화는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걸 전달하고, 오히려 그 여백 덕분에 더 많은 해석을 가능하게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음악을 위한 영화'라는 느낌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가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별한 것 같아요.
그런 구조 속에서 관객은 음악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고, 결국 영화의 흐름에 푹 젖어들 수밖에 없을 것 같거든요. 저도 감정이 말보다 먼저 와닿는 그 경험이 정말 잊히질 않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음악이 인물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방식이 관객인 나에게도 위로처럼 느껴졌어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들이 참 많았는데, 그걸 음악이 이어주는 거죠. 말보다 먼저 울리는 감정, 그게 음악의 힘이구나 싶었어요. 우리가 평소에 마음을 전할 때 괜히 노래를 틀거나, 음악으로 기분을 공유하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경험과도 이어지다 보니까 이 영화는 단순히 서정적인 분위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돼요.
특히 음악을 통해 인물들 사이에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모습은 보는 내내 편안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줬고,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눈을 감고 음에 집중하게 만들었어요.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감정을 가늠하고, 결국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 영화였어요.
사랑보다 중요한 메시지, 서로의 길을 응원하기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까 싶었지만, 영화는 그런 기대를 조용히 비껴가요. <원스>는 로맨스를 보여주기보다, 인생에서 잠깐 마주친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담아내죠. 남자 주인공이 꿈을 향해 다시 나아가게 되는 과정도,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모습도 각자의 길 위에서 굉장히 진심이었어요. 둘은 결국 연인이 되지 않지만, 서로의 삶을 조금 더 나아가게 해준 그런 존재가 돼요. 그런 관계야말로 사랑보다 더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결국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주 단순해요. 인생의 짧은 순간이 우리에게 큰 방향을 바꿔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은 음악처럼 은근하게 다가온다는 거죠. 그리고 그 울림은 아주 오래 남아요. 영화를 보고 나면 괜히 누군가에게 잘해주고 싶어지고, 스쳐 지나간 인연 하나하나가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어요.
이런 관계의 묘미는 어쩌면 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서로를 위로하고 이끌어주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원스>는 그런 의미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본다면 더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예요. 흔한 로맨스나 극적인 감정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보면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맴돌고, 때론 그 노래가 흘러나오면 괜히 마음이 조용해지는 그런 경험.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마법 같아요.
음악이 좋거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있는 분이라면 꼭 한번 감상해보세요. 대사보다는 감정, 줄거리보다는 분위기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생각보다 오래 당신 안에 머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