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영화 ‘드림’을 본 뒤로 한동안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졌던 기억이 있어요. 평소 스포츠 영화나 감동 실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마음의 경계를 조용히 건드리며 들어왔던 것 같아요. 박서준과 아이유라는 캐스팅이 흥미로워 보게 되었지만, 보고 나서 기억에 남은 건 그들의 연기가 담아낸 인간미와, 연출이 만들어낸 정서적인 흐름이었어요. 무엇보다 ‘희망’이란 단어를 억지스럽지 않게 풀어낸 방식이 인상 깊었는데요. 오늘은 그 마음을 담아, 영화 ‘드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 연출 - 다큐 같은 생동감, 하지만 따뜻한 시선
이병헌 감독 특유의 유쾌한 리듬감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지만, 저는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인물들 하나하나에 대한 깊이 있는 배려였어요. 영화는 홈리스 월드컵이라는 생소한 배경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마치 실제 인물들의 다큐를 보는 것처럼 각각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요. 특히 개인적인 상처를 가진 캐릭터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이뤄가는 과정이 감정적으로 너무 설득력 있게 그려져서, 연출이 그들의 ‘실패’보다 ‘시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어요.
제 생각엔 감독이 단순한 성공담을 그리고자 했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스포츠물로 끝났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정’의 의미를 찬찬히 따라가는 이 연출 방식 덕분에, 관객은 응원이 아닌 공감을 먼저 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특히 영상 속 뉴스 인터뷰 장면이나, 카메라가 인물들을 잡는 시선이 너무 인위적이지 않아서 더 몰입이 되었어요. 실제로 홈리스 월드컵이 어떤 취지로 운영되는지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런 사회적 맥락까지 담아낸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이병헌 감독의 연출이 돋보였던 또 하나의 이유는 ‘웃음’과 ‘눈물’의 균형을 참 섬세하게 잡아냈다는 점이에요. 중간중간 터지는 캐릭터들의 엉뚱한 대사나 상황은 실제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 유머가 인물의 아픔을 가볍게 만들지는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유쾌한 순간들이 쌓이면서, 후반부의 감정선이 더 깊게 다가오는 걸 느꼈어요. 아무리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무겁게만 몰고 가지 않고, 그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졌달까요. 저는 이런 연출 덕분에 영화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오래 남았던 것 같아요.
🌱 메시지 - 실패한 사람은 없다,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만든 건 ‘실패’라는 단어였어요. 홈리스, 전과자, 무직 등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인물들이 다시 공을 차기 시작할 때, 그건 단순히 축구 경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싸움처럼 느껴졌어요. 영화는 이들의 배경을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아요. 오히려 ‘당신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라는 메시지를 담담하게 건네죠.
저는 특히 영화 후반부, 한 인물이 자기 과거를 솔직히 털어놓는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그 장면에서 어떤 성공적인 결과보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단순히 감동을 강요하는 식의 구성이 아니고, 각자의 삶이 그 자체로 의미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도전이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는 ‘성공’이라는 개념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은 사회적 기준에 맞춰져 있지만, 이 영화 속 인물들에게는 오늘을 무사히 견뎌내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 진짜 성공처럼 느껴졌거든요. 누군가는 다시 가족에게 연락할 용기를 냈고, 누군가는 경기 중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죠. 그 장면들이 모두 똑같이 소중하게 다뤄지면서, 관객인 저도 어느새 ‘실패’라는 말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감동 영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조용히 일깨워주는 이야기 같았어요.
🎭 배우들 - ‘연기’가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던 사람들
박서준은 이번 역할을 통해 본인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지점을 보여줬다고 느꼈어요. 기존에는 다소 이상화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는데, 이번에는 어쩔 줄 몰라하는 감독 역을 연기하면서 인간적인 허술함과 성장하는 모습을 잘 표현했어요. 마냥 멋있지 않은, 그래서 더 현실적인 캐릭터 터였달까요?
아이유 역시 놀라웠어요. 캐릭터 자체는 뻔해 보일 수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그녀가 말하는 장면에서는 늘 약간의 울림이 있었어요. 특히 그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담백한 눈빛이 인물의 진심을 잘 전달해 준 것 같아요. 둘 사이의 케미도 너무 과하지 않아서 좋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이 그 배역에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캐릭터들이 실제 사람처럼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조연 배우들의 존재감이었어요. 단순한 배경 인물이 아니라, 각자 개성 있는 삶의 결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어요. 각자의 과거와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처음에는 엉뚱하고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담긴 진심이 느껴졌거든요. 이들이 함께 웃고, 다투고, 결국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도 그 팀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저는 이런 식의 배우 구성과 호흡이 영화의 분위기를 훨씬 더 생생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대사 전달이 아니라, ‘사람’이 느껴지는 연기였기에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길에 대해 회의감이 들거나, 다시 시작할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한 번쯤 보셨으면 좋겠어요. 웃음도 있지만, 그보다 더 진하게 남는 건 따뜻한 공감과 용기의 메시지였어요. 잔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 한 편이, 마음을 조용히 위로해 주는 경험이 될 거예요.